서을주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Human cytogenetics의 역사는 before 1956과 after 1956으로 나누어진다. T.C. Hsu 교수와 Albert Levan 교수에 의해 인간의 염색체수가 46개라는 것이 보고된 1956년은 세포유전학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된 해이기 때문이다.
종양 세포유전학에서 기념비적인 시기는 언제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Peter Nowell 박사와 David Hungerford 박사가 Philadelphia (Ph) 염색체를 발견한 1960년이라고 말할 것이다. 특정한 염색체 이상이 종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기에 역사적인 랜드마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Ph 염색체의 실체는 10년이 넘도록 미스테리로 남아 있었다.
1973년에서야 22번 염색체의 결실로 생각해오던 Ph 염색체가 9번 염색체 장완과 상호전좌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Nature 지에 게재되었다. 50세를 목전에 둔 Janet Davison Rowley라는 여성교수가 quinacrine banding과 Giemsa banding으로 염색체를 꼼꼼히 분석하여 찾아낸 것이다. 그녀의 발견은 특정 유전자의 절단과 융합이 종양 발생에 관여한다는 ‘cancer genetics’의 장을 열게 한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t(9;22)은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밝혀졌을 테지만, Rowley 교수가 아니었다면 그 시기가 더 늦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종양 세포유전학의 역사를 강의할 때 가장 중요한 사건과 인물로서 이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수업시간이 허락된다면 그녀를 기념한 생전의 동영상을 학생들과 보면서 영감을 받는다. 늘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Rowley 교수는 23세에 의과대학 졸업과 함께 곧장 결혼을 했고 네명의 아들을 키울때까지 part-time으로 일했다. 1962년에 Oxford 대학에서 염색체 분석 기법을 배운 후 Chicago 대학으로 돌아와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백혈병 환자의 염색체와 씨름을 했다고 한다. 1970년 두번째 연구년을 맞아 Oxford 대학에서 염색체의 banding 기법들을 배우게 되었다. 종종 염색체 사진들을 집에 가져와 식탁에서 염색체들을 각각 잘라서 짝을 맞추는 작업(핵형분석, karyotyping)을 하곤 했다. 1972년 봄, Rowley 교수는 여느 때처럼 식탁 주위에 모인 자녀들에게 재채기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염색체 짝을 맞추다가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서 t(8;21), 즉 상호전좌라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그리고선 다른 종류의 백혈병들을 조사하였고 t(9;22)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Rowley 교수와 개인적인 만남은 없었지만, 2003년 미국유전학회에서 78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매진하며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에 놀랐고 그분의 업적과 기록들을 보며, Rowley 교수는 내가 일하는 종양 세포유전학의 롤모델이 되었다.
롤모델인 Rowley 교수로부터, 주위의 동료로부터, 또한 스스로 배운, 종양 세포유전학 업무(?)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4 E’s, 즉 Exquisiteness, Excitement, Enjoyment, Education로 정리해본다.
Exquisiteness: 염색체들을 잘라서 짝을 맞추는 작업은 고도의 ‘exquisite art’라고 생각한다. Rowley 교수는 염색체 사진으로 가위와 풀을 가지고 아트를 한 셈이다. 요즘 자동화 장비는 분열중기세포를 빠른 속도로 검색해주고 핵형분석 소프트웨어가 염색체 짝을 어느 정도는 맞추어준다. 최근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아져서, deep learning된 컴퓨터가 염색체 이상을 정확히 검출하여 karyotype nomenclature까지 알려주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Trisomy 21를 가진 Down 증후군이나 t(9;22) 정도는 분열중기사진과 핵형사진이 많고 단순한 염색체 이상이기 때문에 deep learning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 종양 세포의 염색체는 짧고 분산상태가 좋지 않아서 컴퓨터가 raw data 입력 단계에서 아예 거부할지도 모른다. 특정 종양은 잘 알려진 염색체 이상을 보이지만, 많은 경우는 다양하고 복잡한 염색체 이상과 여러 서브클론들로 관찰된다. 따라서 핵형분석과 그에 따른 해석은 전문가의 눈길과 손길이 필요한 정교한 아트이다. 세포유전학 검사는 염색체 검사뿐 아니라 분자적 기법이 결합된 FISH 검사와 마이크로어레이 검사도 있다. 종양에서는 이러한 검사법들을 함께 시행하여 유전학적 이상을 정확히 판단하게 되므로, 정교한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Excitement: 환자의 염색체를 분석하는 중에 새로운 중요한 염색체 이상을 보는 순간 익사이팅 상태가 된다. 너무 너무 복잡한 염색체 이상들이 환자의 종양과 연결고리도 없이 눈앞에 펼쳐지면 코티졸이 마구 분비된다. 추가적인 검사를 하고 문헌을 찾고 중요한 소견을 발견하게 되면 엔도르핀 분비가 느껴진다. 1972년의 어느 봄날, Hyde Park의 가정집 식탁에서 흥분한 Rowley 교수가 유레카라고 외치지 않았을까?
Enjoyment: 최근에 임상검사실은 마치 공장처럼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염색체 검사는 세포배양 과정부터 수확단계, 슬라이드 제작, G-banding까지 염색체를 분석하기 직전의 단계는 수작업인 단순한 노동이다. 염색체 분석단계에서는 최소 20개의 분열중기세포를 꼼꼼히 관찰해야 하므로 정신적 소모가 많고 지루한 일이기도 하여, 자칫하면 중요한 이상을 놓칠 수도 있고 염색체 이상들을 대충 분석할 수도 있다. FISH 검사 또한 수작업 과정과 암실에서의 형광 판독으로 인해 작업환경이 좋지 않은 검사이다. 검사실 직원들과 전문의는 각각의 검사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검사에 최선을 다하게 되고 보람을 느끼며, 일 자체를 즐기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가 하는 검사들이 오래도록 소중한 일이 될 것이다. Rowley 교수는 난소암으로 88세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도 매일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연구실을 다녔다고 한다. 일과 연구에 대한 enjoyment가 그녀의 엄청난 에너지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Education: 종양 세포유전학의 검사들은 늘 진화하고 있다. 새로운 검사기법이 개발되고, 새로운 유전자의 FISH 소식자 정보들이 들어오고, 만족스런 정도는 아니지만 자동화 장비도 소개되고 있다. 더욱 새로운 것은 매일 만나는 환자 검체들이다. 종양 유전학의 최신 연구나 가이드라인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의 업무는 배우고 익히고 또 가르치는 것과 떼어놓을 수가 없다.
종양 세포유전학 검사의 중요한 역할은 환자의 종양세포에서 염색체 이상, 유전적 이상을 정확히 분석하여 그 결과가 진단과 치료, 예후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Exquisiteness, Excitement, Enjoyment, Education, 4E’s가 연결되고 순환할 때 종양 세포유전학 검사는 제 역할을 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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